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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향신문
작성일 2009-03-17 (화)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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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씨 “남·북 몽골경협” 제의 (알타이 경제·문화연합..)
2009. 3. 17
경향신문 (펌)

황석영씨 “남·북 몽골경협” 제의

한윤정기자


ㆍ알타이 경제·문화연합… 새 협력 모델로


작가 황석영씨(66)가 몽골을 중심으로 남한과 북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연합하는 ‘알타이 경제·문화 연합’을 새로운 남북 협력 방안으로 제시했다.


1올해 방북 20주년을 맞은 황씨는 1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북의 정부 간 관계는 교착상태이지만 민간교류는 과거의 1.5배에 이른다”며 “과거 문익환 목사와 김일성 주석이 했던 것처럼 한 발씩 양보하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고 개방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남북이 몽골지역 경제개발에 동참하는 게 좋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오는 5월 몽골을 방문해 이 문제를 협의할 것으로 알고 있고, 문단에서도 이때에 맞춰 제주도에서 ‘알타이 문화연합’ 행사를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윤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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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17
경향신문 (펌)


[경향과의 만남] 황석영 “남북 막힌 혈맥 뚫고, 백년대계 세워야”


글 한윤정·사진 박민규기자 yjhan@kyunghyang.com


작가 황석영씨는 이달 중 몽골을 다녀올 예정이다.
몽골의 작가, 정치가들을 만나 ‘알타이 문화연합’ 구성을 협의하기 위함이다.
내친 김에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문화인들과도 접촉할 생각이다.

오는 5월 제주도에서 열 계획인 ‘알타이 문화연합’ 행사는
혈연과 언어의 공통점에 기반을 둔 새로운 유라시아 공동체의 출발을 선포하는 의미를 갖는다.





오는 25일 방북 20주년을 맞는 작가를 만나 ‘알타이 연합’을 중심으로 한 그의 남북협력과 통일방안을 들었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헌신했던 작가는 “한반도의 막힌 혈맥을 뚫는 일”을 현재 자신의 과제로 들었다.


그는 “동북아시아의 주요 이행기를 맞아 진보와 보수라는 낡은 틀의 이념적 정쟁을 되풀이하는 대신 나라의 백년대계를 탄탄히 세워야 한다”며 “한국전쟁 60주년인 내년에는 세계적인 작가들과 더불어 한반도의 통일을 촉구하는 대규모 이벤트를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알타이 경제·문화연합’은 어떤 것입니까.


"몽골의 인구는 인천시와 비슷한 250만명에 불과하지만 땅은 한반도의 8배가 넘고 엄청난 자원과 개발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몽골 지도층은 10여년 전 우리와 수교를 개시하던 초기부터 일관되게 몽골+투 코리아 또는 몽골·코리아·중앙아시아가 연합하는 ‘알타이 연합’ 등의 혈연적 연합을 제안해 왔습니다.


저는 몇년 전부터 몽골의 정치주도층이기도 한 몽골 지식인, 작가들과 개인적으로 만날 때마다 그들의 그런 염원을 확인해 왔습니다.


이전 정부가 한국·중국·일본을 잇는 동북아 연합을 주창해 왔지만 실제로 성과는 없습니다.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알타이연합은 다릅니다. 몽골은 중국을 경계하기 위해 남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원합니다. 지난해 북한과 200만명의 노동자 송출협정을 맺었고, 남한에도 400만㏊의 농지를 빌려주겠다고 제안했어요.


과거 몽골은 유목국가였지만 기후 온난화 때문에 대부분 땅이 농지로 변해 옥수수·콩·밀 등을 경작할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이나 동남아연합처럼 알타이연합을 현실적으로 실현시키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문제가 바로 한반도의 분단이지요. 따라서 지역공동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한과의 관계 변화는 이념적인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로서 풀어갈 수 있습니다. 일례로 동시베리아에서 천연가스를 끌어오는 관이 북한을 통과하는 조건으로 우리 정부가 1억5000만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한 것을 들 수 있지요.”



-현재 남북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데요.



“슬로건과 성명전은 계속되지만 지난 10여년간 이룩한 교류의 흐름을 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남북 정부 간에 굳건하게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진전이고 희망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계속돼온 민간분야의 남북교류에 대한 경험과 경륜은 정치인들의 탁상공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축적되어왔지요.”


-남북관계에 대한 정부 정책의 기조를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특정 정당의 지지 여부를 떠나 현 정부의 성공을 바라고 있습니다.
산업화, 민주화가 남긴 명암을 돌아볼 때 지금은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구한말 우리가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고 남의 식민지가 된 이래 그 대단원의 마지막 시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그 이유는 세 가지인데 첫째, 냉전과 분단시대가 드디어 변화하려는 시점에 도달해 있고 둘째, 세계체제의 재편성이 진행되는 가운데 동북아권의 경제·문화적 역량이 증대되고 있어요. 셋째로는 우리가 중국·일본 등 강대국 사이에서 과연 선진국으로 비약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갈림길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좌우, 진보·보수의 양극화는 근대화 기간 민주화 세력과 권위주의 정부 사이 갈등의 잔재이며, 이런 식의 이념적 정쟁으로 집권을 되풀이하게 되면 좌든 우든 준비되지 않은 정부와 정책의 간헐적인 주고받기가 계속될 뿐입니다.

새 정부는 스스로 ‘중도실용주의’를 정책기조로 내세웠어요. 대선 때 자기 측을 지지했던 기반 안에서 온건하고 합리적인 공감대를 유지해 나가면서도 새로운 정치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과감한 정책과 실적이 뒷받침돼야 할 것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이전 정부의 유산과 철저하게 결별하겠다는 식으로 모든 정책을 결행해온 인상이 짙은데, 지난 1년간의 ‘숨 고르기’가 충분히 있었으니 이제부터는 다가올 동북아의 변화에 대응하고 새로운 남북정책을 찾아 돌파구를 마련할 시점입니다.”



-현재의 남북관계에 대해 어떤 조언을 주시겠습니까.


“20년 전 방북했을 당시의 일화를 들 수 있습니다.

일정의 마지막 날에 문익환 목사 일행과 저는 다른 초대소에 묵고 있어서 먼저 떠나는 그들에게 인사를 하러 들렀지요. 가보니까 문 목사는 대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정자에서 시를 한 편 지었노라면서 큰소리로 낭송했습니다. 매우 낭만적이고 순수한 내용이었고, 돌아가면 체포·투옥될 엄중한 상황과는 전혀 걸맞지 않은 장면이었습니다. 다시 재일 시사평론가인 정경모씨를 찾았더니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귀에다 이어폰을 꽂고 뭔가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말없이 내게 이어폰을 내밀기에 들어보니 슈베르트의 연가곡인 ‘겨울나그네’ 중 ‘폭풍우의 아침’이라는 곡이었습니다. ‘광란의 폭풍우는 하늘을 찢고 흩어진 구름은 몸부림치고 있다’라고 시작되는 노래죠. 맨 앞에 나오는 노래는 ‘밤의 안녕’인데 ‘안녕, 살을 에는 듯한 밤의 추위 속으로 나는 사랑을 떠나 방랑의 길에 나선다’ 하면서 시작됩니다. 잃어버린 사랑의 추억을 남기고 정처없이 먼 길을 떠나는 나그네의 심경이 드러난 곡이지요.

정씨가 내게 말했어요.

‘우리들 같지요?’ 엄중한 분단상황 속에서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당시에 남은 국가연합으로, 북은 연방제로 통일 방안이 팽팽하게 맞서 있었는데 사실은 글자만 몇 개 다를 뿐 같은 소리였습니다. 문 목사가 남측의 형편상 중간에 과도적 기간이 있어야 한다고 떼를 써서 김일성 주석이 한발 물러섰다고 하는 것이 ‘느슨한’을 앞에 붙인 연방제 안이었습니다. 이 ‘느슨한 연방제’는 우리들 행동의 흔적으로서 ‘6·15 남북공동성명’에 남게 되었습니다. ‘느슨한’은 이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남북 위기의 시기마다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잘 드러내는 정신이 되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대해 들으신 바가 있는지, 향후 권력구도가 어떻게 될 걸로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늘 우리 같은 사람들의 ‘느슨한’ 통일관에 대해 감상적 통일관이라고 말하는 정치인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는 당신들은 현실화되지 않은 내일을 현실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얘기지요. 김일성 유고설은 그가 살아 있을 때 얼마나 많이 되풀이됐습니까.

그러나 그가 죽은 뒤에 북한이 붕괴했던가요. 반 세기 이상이나 한반도의 북쪽에서 버티어 온 정치세력이 그렇게 간단하게 일시에 무너질 거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또한 갑자기 무너진다면 매우 위험한 노릇이지요. 그래서 미국도 협상 당사자에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겠고요. 하여튼 바로 오늘 힘써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때입니다.”



-지난 대선 때 진보대연합을 주장하셨는데 지금까지 야당이 전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보의 단합? 그건 아시다시피 좌절됐습니다.

우리네는 현실주의자를 표방하는 이는 많아도 실천하는 이는 적습니다. 저는 2005년 무렵부터 남북관계에서나 사회·정치적으로나 ‘중도적’ 입장의 어려움과 필요성에 대해 말해왔어요. 좌우 양편이 조금씩 수평이동하자는 겁니다. 한국사회가 선진화하려면 중도 보수의 숫자가 많아져야 한다고 밝혔는데 잘 전달된 것 같지 않아요. 한국사회가 너무 오른쪽 끝으로 치우쳐 있는 데 대한 불만에서 나온 것이지요.

사실은 이런 애매한 소리는 진보 측의 선명성 경쟁이나 대의명분주의에 묻혀서 들리지도 않아요. 강경하고 지당한 말씀을 해서 자기 편의 지지를 받기는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큰 선에서 양쪽을 다 비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식인은 전보다 더욱 세속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끼리 옳은 얘기보다는 대중과의 소통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기거든요.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양자택일형 옳고 그름을 따지고 밀어붙이는 데에 국민적 역량을 탕진하고 있어요. 양쪽 모두 대화의 통로를 가질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황석영은

1943년 만주 창춘에서 태어났으며 해방후 평양을 거쳐 월남, 영등포에 정착했다. 경복고를 자퇴하고 가출해 남도지방을 방랑하다가 62년 ‘사상계’에 단편 ‘입석부근’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해방대에 입대해 베트남전에 참전(1967~69년)했으며 해남에서 현장문화운동을 하다가 광주항쟁을 맞이해 그 진상을 세상에 알렸다. 89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초청으로 방북한 것을 계기로 5년간 베를린·뉴욕에서 망명생활을 한 뒤 98년 귀국해 5년간 복역했다. 대표작으로 <객지> <한씨연대기> <장길산> <무기의 그늘> <손님> <바리데기> 등이 있다.


<글 한윤정·사진 박민규기자 yjhan@kyunghyang.com>

이름아이콘 경향신문
2009-03-17 12:52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mode=view&code=960100&artid=20090316180847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mode=view&code=210000&artid=200903161811405
   
이름아이콘 한 빛
2009-03-17 12:54

"한국-몽골 국가연합론"

* 클릭 -> http://www.hanbitkorea.com/technote7/board.php?board=hbboard&search=연합&shwhere=subject&command=body&no=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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