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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자료실

작성자 한 빛
작성일 2002-03-14 (목)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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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위해 북한과 대화하기



정태욱/영남대 법과대학 조교수



1. 북한 인권문제 접근의 어려움


북한의 인권문제는 양날의 칼과 같은 위험성을 지닌 문제이다. 한편으로 인권의 강조는 궁지에 몰려 있는 북한에 대하여 가혹한 추궁이 되어, 미국과 남한의 강경보수파들의 정치공세를 부추기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인권문제를 접어두고 평화와 통일만을 얘기하는 것은 다수의 북한 주민들의 궁핍과 부자유를 방관하고 북한 체제의 비민주성을 옹호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그렇다고 단지 위험을 회피하려는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아무런 결실도 기약할 수 없는 일종의 패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북한 주민들의 삶의 절박성을 반영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남한 사람들의 삶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이다. 예컨대 북한에서 정치적 억압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남한의 정치적 인권에 대한 제약도 커질 수밖에 없으며, 반면에 북한에서 사회적 인권의 실현이 더욱 충실하게 실현될수록 우리의 사회안전망도 역시 보다 발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북한의 인권문제의 양쪽에 놓인 함정을 피하면서 인권의 정신을 놓치지 않는 길은 무엇일까? 그에 대하여 우리는 최근에 북한과 유럽연합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인권의 대화로부터 무언가 시사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미국의 '인권외교'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이른바 '우리식 인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유럽연합과는 인권을 위한 대화에 합의를 보았으며, 비록 시작에 불과하지만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


국제 정치역학 등의 문제를 접어 둔다면 바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유럽연합의 접근태도가 중요한 변수가 아닌가 한다. 즉 인권문제의 제기가 '인권을 위한 대화'로 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심장한 것이다. 유럽연합은 그 대화의 정신을 "평등과 상호존중의 관점"으로 얘기하고 있다.



2. 북한과의 대화


북한과의 대화는 곧 북한을 대화의 상대방으로 존중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지금까지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바로 그 점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북한을 대화의 상대방으로 볼 수 없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는 북한의 인권문제는 북한체제의 붕괴 내지는 변혁의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고 보게 된다. 이른바 저항권발동론, 북한민주화운동론 그리고 국제법상의 인도적 개입론 등이 그에 해당한다.(주1)


그러나 이는 모두 북한정부의 통치적 권위를 부인하는 것으로서 현재 한반도의 사정상 더 큰 위험과 비극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물론 사태가 보다 악화되어 북한 내부에 분열이 일어나 새로운 정치적 세력이 일정한 대표성을 획득하여 투쟁에 돌입하고 또 그로 인한 혼란으로 한반도 및 지역의 평화에 중대한 위협을 초래한다면 그 때에는 인도적 개입 등이 정당하고 또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북한 정부가 궁핍상태를 벗어나고자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고, 또 국가기구가 여전히 효율적으로 작동하며, 대다수의 주민들이 그에 충성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그 정부의 대표성을 부인할 수준은 아니라고 할 것이며,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오히려 현재의 북한 통치질서를 존중하면서 인권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는 것이다.

비록 적폐가 클지라도, 북한 주민이 성취해온 역사와 북한 주민이 간직해온 전통들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과연 그들의 자존심과 주체성을 온전히 감안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런 의식구조 하에서의 지원과 운동이 북한 주민을 참으로 인권의 주체로서 세우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는 대단히 의심스럽다.(주2)


그러나 북한을 대화의 상대방으로 인정한다는 것이 곧 북한의 체제를 긍정하고 현상유지를 지지하는 것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대화의 당사자로서 평등한 지위를 상호 승인한다는 것은 다시 인권의 보편적 관점에서 상호 애정 어린 비판을 하고 설득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대화라는 것이 단지 사교상의 수단은 아닌 것이다. 서로 의례적인 인사말만 하기 위하여 마주 앉는 것은 무의미한 시간낭비일 뿐 아니라 결국은 대화를 배반하는 정치적 술수로 이행하기 십상이다. 인권을 위한 대화는 단지 상대만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 아니며, 인류 역사가 성취해 온 보편적 가치에 대한 겸허함과 인권에 대한 헌신과 존중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3. 대화의 규범


이렇게 하여 북한과 인권을 위한 대화를 시작한다고 할 때, 이제 문제는 어떤 식으로 대화를 해나갈 것인가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화란, 우선 서로 상대방의 논리를 상대의 관점에서 이해해보는 것이고, 또 상대방에게 나의 견해와 입장을 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견해와 입장에도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것을 기꺼이 상대방으로부터 보충받는 것임을 기억하는 일이다.


따라서 북한과의 대화가 단지 북한의 인권문제를 지적하고 탄핵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류이다. 그런 대화는 은폐된 선전선동과 다를 바가 없다. 북한과의 인권을 위한 대화는 바로 우리의 인권상황도 아울러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하고, 우리의 상황에 대한 반성적 자세로서 북한에 접근해 가야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예컨대, 북한에서의 인권이 수령에 대한 충성도에 의하여 좌우되는 취약성을 보인다면, 우리의 인권상황은 인권의 주장과 보호에서 금권적 지위에 의하여 좌우되는 취약성을 보인다는 점을 상호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반성적 접근은 어느 일방이 인권을 독점할 수 없으며, 상호 인권을 존중한다는 겸허함을 필요로 한다. 그리하여 인권의 대화는 상호 우열을 가리는 승부가 아니라 인권의 보편적 이념에 대한 공동의 추구와 배움의 과정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남한은 북한 주민들이 기아에서 허덕이는 것 또는 정치적 자유가 극심하게 제약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북한은 남한의 도덕이 황폐화되고 인간이 상품화되는 것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적은 바로 보편적 인권에 대한 상호 배움의 과정으로 이해되고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그것은 단지 비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발전을 위한 질정과 격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상대의 문제를 지적함에 있어, 우선 이 쪽의 잣대가 아니라 상대의 잣대를 기준으로 하여 얘기하는 기법이 필요하다. 즉 북한의 기아와 정치적 억압을 지적함에 있어 그것을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바로 북한의 이념인 주체사상의 언어로써 얘기할 수 있어야 하며,(주3) 북한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금권에 의한 인권의 제약상황에 대하여 자유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의 규범으로써 얘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4. 상호공존의 인권개념


위와 같은 대화의 규범을 유의하면서 이제 대화의 내용인 인권에 대한 공동의제를 생각해 보자. 그것은 곧 대화의 당사자들이 상호 납득할 수 있는 보편성이 인정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 보편성은 어느 일방의 세계관의 확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관이 평화공존하는 가운데 각 체제의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합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그 무엇에서 찾아야만 할 것이다.(주4)


그 보편성은 서구 전통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인권개념의 확장을 통해서 구해질 수도 없을 것이며, 북한의 유일수령체제인 주체사상의 확장에서도 구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주체사상이 강조하는 인간중심의 사상, 또는 수령체제가 강조하는 인민에 대한 애정과 복리의 증진은 충분히 보편성을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개인의 존엄 및 법 앞의 평등과 기회 균등의 원리도 역시 보편성이 있다고 믿는다. 즉 필자는 남북이 서로의 이데올로기 자체에 집착하지 말고, 인권을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자율적인 것으로, 혹은 각 이데올로기의 공통적 구성부분으로 만들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인권의 하부구조인 사회체제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용을 전제로 한다.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의 수령중심의 유일체제는 용납될 수 없으며, 북한의 관점에서 남한의 자유분방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도 또한 용인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타방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 자체는 서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즉 그러한 체제이념을 근거로 인권을 규정하려는 시도도 삼가하고, 아울러 인권의 개념을 가지고 그러한 체제이념 자체를 타격하는 것도 자제하자는 것이다. 다만 그 체제이념이 인권을 무력화하는 그 지점에 가서는 인권을 수호하자는 것이다. 즉 인권을 각 체제이념의 과도한 질주를 제한하는 한계로서 이해해보는 것이다.

이것은 보편적 인권의 범위를 가능한 좁혀서 이해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정치적 문제로 인권의 핵심이 다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주5)


이렇게 상호 관용을 전제로 하되, 인권의 정신을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북한에 대하여 어떤 지적과 요구를 할 수 있을까? 북한의 체제에서 공동체와 무관한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요구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의 생존과 최저생계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체제에서 사상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요구할 수는 없겠지만, 정치비판자들의 대우에 관한 문제제기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체제에서 개별적인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요구하기 어렵겠지만, 사회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의 필요성은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5. 북한의 기근과 식량지원의 문제


인권의 공동의제를 설정함에 있어 루즈벨트가 천명한 4대 인권 가운데 하나인 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 즉 생존의 인권을 접어둘 수는 없을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의 대기근은 북한 인권상황의 참담함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기근이 어떻게 발생하였을까? 이에 대하여 한편에서는 북한의 자연조건의 불리함과 90년대 이후 빈발한 홍수와 가뭄 그리고 사회주의권의 몰락 및 미국의 경제제재에 따른 교역의 곤란 등 외재적 차원에서 그 원인을 구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 체제의 실패라는 내재적인 차원에서 그 원인을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은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곡물자급도가 떨어지기 시작하였으며, 또 일반적으로 기근의 발생은 단지 자연재해 탓만은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 센(Sen)의 연구가 밝혀 주듯이 기근의 방지는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점(주6), 그리고 같이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다른 제3세계 국가들에는 그와 같은 기근이 발생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북한의 식량난은 우연적인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사실 북한의 대기근이 사회주의 경제의 부실함과 농업시스템의 결함 나아가 북한의 수령중심체제의 무책임성에서 연유한 바 크다는 주장은 그 동안 많이 있어 왔으며, 그러한 추정은 일응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에 대한 입증책임은 북한 당국이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인권문제에서 주체사상과 북한의 통치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앞서 말한 대로 대화의 정신에 배치된다.



기근을 논하는 데에 있어 체제의 결함과 집권자들의 무책임이 거론될 수 있을 것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근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기근해소를 위한 대화의 일환으로 제기되어야지, 체제의 부정과 비난으로까지 나아가는 것은 삼가야 한다. 예컨대 이른바 주체농법의 비과학성과 비효율성은 그것대로 지적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북한 체제를 부정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주체사상 및 북한의 통치이념의 관점에서도 인민의 생존과 복리는 가장 중요한 국가의 책무로 정해져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인도주의적 원조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것은 원칙적으로 인권적 차원에서 수행되어야지 그것을 정치적 차원으로 끌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즉 원조 식량이 기아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지적은 당연하고, 또 그것이 체제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면 그 한도 내에서 체제를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식량을 원조하면서 북한의 농업시스템 문제를 언급할 수 있을 것이며, 공동연구를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원칙적으로 인도주의적인 인권의 문제와 정치적 문제 혹은 경제적 교류의 문제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즉 남북의 협상에서 경제적 교류와 인도적 원조를 정치적 목적을 위한 압력수단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본다. 물론 민간단체들은 자신들의 이념과 원칙에 따라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그것을 막을 수는 없으며, 각자의 정치적 도덕적 소신에 따라 사회참여를 할 자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국가 혹은 공적인 기구에서 하는 경우에는 인도적 문제, 정치문제, 경제문제를 각각의 관점에서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도적 문제는 인권의 보편적 이념에 따라, 정치문제는 평화와 공존의 이념에 따라, 그리고 경제문제는 상호 이익이라는 호혜성의 원칙에 따라 각기 접근해 들어가야 할 것이다.



물론 협상에 있어 일괄타결의 기법이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경우에 따라서 어느 한 문제의 타결이 없이는 다른 문제의 타결도 지연시키는 방법이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도적 문제를 정치문제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대화의 기반인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 될 수 있다. 이 점 남북 쌍방이 모두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6. 인권과 평화


끝으로 얘기할 것은 평화의 문제이다. 역시 루즈벨트가 천명한 4대 자유의 하나인 공포 즉, 전쟁공포로부터의 해방은 그 자체가 인권의 핵심이면서, 동시에 다른 인권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조건이 되기도 한다. 북한은 자신들의 인권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바로 한반도의 평화에서 구하고 있다.


북한은 2000년 3월, 뒤늦게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한 시민권규약의 제2차 정기보고서에서 "공격적 전쟁, 특히 핵전쟁을 인류의 생명에 가장 큰 위협으로 간주하고 이를 강력하게 거부한다"고 주장하고, "인민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 현재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한반도로부터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고, 평화를 확보하며,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는 일이다"고 말하고 있다.(주7)



북한의 그러한 주장은 자신의 인권상황을 호도하기 위한 측면도 있을 것이나, 북한과 미국 사이의 군사적 대립의 역사적 진실을 반영하는 측면을 부인할 수는 없다.(주8)



남한 사람들에게 1994년의 북-미간 전쟁의 위기는 단지 일과성 해프닝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당시의 상황은 북한은 물론 한반도 전체의 운명에 있어 삶과 죽음이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였던 것이다.(주9)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와 2000년 조명록의 방미에 의한 북-미 공동성명 등으로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전쟁위험은 상당히 불식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무산되고, 부시대통령이 들어선 이후 한반도는 다시 긴장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주10)



현재 북한의 군부중심의 권위주의적 체제의 명분은 바로 전쟁위험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수령중심의 권위주의적 통치체제는 전쟁의 위기를 빌미로 한 전체주의적 총동원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군부권위주의 체제야말로 우리 남한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사회의 인권에 가장 치명적인 요소가 된다.



우리 남한에게 6.25전쟁의 가해자는 북한이고 피해자는 남한이지만, 북한에게 6.25전쟁의 가해자는 미국이고 피해자는 북한이다. 우리의 현대사가 북한의 남침위협에 대한 공포로 점철되어 왔다면 북한도 미국의 전쟁위험에 대한 공포로 점철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인권상황이 바로 그러한 분단과 안보의 차원에서 가장 심한 왜곡과 축소를 보여 왔듯이, 북한의 혹독한 인권상황의 가장 큰 원인도 거기에 있을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북한 인권에 대하여 논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바로 한반도의 평화의 확보, 그리고 북-미의 관계개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이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인권은 전쟁의 위협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명분이 서는 얘기이다.



따라서 북한의 인권상황에 분개하며 북한 체제의 혁파를 주장하는 사람은, 동시에 그 가혹한 상황을 정당화시키는 한반도의 군사적 위험상황에 대해서도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북-미관계의 개선에 대한 요구는 접어두고 단지 북한체제와 인권상황에 대한 비난에만 몰두하는 것은, 북한체제의 민주화와 인권의 신장에 도움을 주기보다 한반도와 북-미관계의 정치역학의 소용돌이 속에 오히려 악용되는 결과를 빚을지 모른다.






(주1)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논의로는 졸고, [북한 체제와 인권문제의 논의에 단서를 붙이며], <민주법학>(제20호, 2001, 민주주의법학연구회), 63면 이하 참조.


(주2) 중국에 체류하고 있는 탈북자들조차 통일을 위해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서 미군철수를 꼽았고(좋은벗들 통계조사 66.1%), 또 상당수가 남한에 비해 북한의 복지제도가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위의 통계조사 24.5%, 좋은벗들 엮음, {북한 사회 - 무엇이 변하고 있는가}, 정토출판, 2001, 118, 124, 136, 150면)는 사실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주3) 북한의 헌법도 기본적인 인권에 대하여 제64조 제1문에서 "국가는 모든 공민에게 참다운 민주주의적 권리와 자유, 행복한 물질문화생활을 실질적으로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4) 6월 13일 브뤼셀에서 EU 집행부와 북한 정부 관리 5명 사이에 인권에 대한 탐색전적인 회동이 이루어졌으며, 양측은 인권에 관한 기본원칙, 유엔인권기구, 유엔인권기구와의 협력 등에 대해 시각을 교환했다. <연합뉴스> 2001년 6월 14일.


(주5) 이러한 접근에 관하여는 최근 서구의 지도적인 사상가의 한 사람인 존 롤즈의 인권관이 시사하는 바가 많다. 롤즈는 자유주의적 인권개념을 벗어나 이른바 권위주의적 국가들에서도 고유한 인권체제가 성립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롤즈의 인권개념과 국제관계론에 대하여는 롤즈, {만민법}(장동진 책임번역, 이끌리오, 2000), 참조.


(주6) 아마티야 센, {자유로서의 발전}, 박우희 역, 세종연구원, 2001, 221-2면 참조. 센은 나아가 기근을 정치체제의 비민주성과도 연계시키고 있다. 위의 책, 212-3, 233-4면 참조.


(주7)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시행에 관한 북한의 제2차 정기보고서], CCPR/C/PRK/2000/24May2000 제32항.


(주8) 이에 관하여 참고할 수 있는 최근의 저작으로는 마틴 하트-랜즈버그, {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 -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 당대, 2000.


(주9)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은, 돈 오버도퍼, {두 개의 코리아}, 1998, 중앙일보사, 283-308쪽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한편 보다 심층적인 분석으로는 리언 시걸, {미국은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 사회평론, 1999 참조.



(주10) 흔히 페리보고서에 대응하는 것으로 말해지는 아미티지(현 미국 국무부 부장관) 보고서에는 외교적 노력의 실패시에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하나의 방안으로 명시하고 있다. 아미티지(Richard L. Armitage), [아미티지 보고서 - 북한에 대한 포괄적 접근], 장성민 책임편역, {부시행정부의 한반도리포트 - 부시정부 파워 10인의 최신 한반도 관련 보고서}, 252-2쪽. 한편 이 보고서에는 북한의 미사일 수송차단을 위한 이른바 "자위권발동"도 거론되고 있다.

위의 책, 250쪽. 한편 지난 5월에 미국의 미사일방어계획의 설득 및 대북정책의 조율을 위해 방한한 아미티지는 햇볕정책의 지지와 북한과의 대화의 재개를 선언하면서, 다른 한편 종래의 비확산정책에 더하여 반(counter)확산정책을 천명하여 주목을 끌었다. 이는 소위 '불량국가'들의 대량 살상무기를 무력을 통해서라도 제거해 나갈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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