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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련에서 '자유'와 '개혁(변화)'을 노래했던 러시아의 살아있는 영웅 빅토르 최! '변화' 노래 : 빅토르 최 온기 대신, 유리의 녹색 빛 불대신, 연기 달력의 그물에서 하루가 포착되었고 붉은 태양은 모든 것을 남김없이 불사르네 하루는 그와 함께 다 타버리고 불타는 도시에는 여름이 깔리네 우리의 마음은 변화를 원해 우리의 눈도 변화를 원해 우리의 웃음과 우리의 눈물 그리고 우리의 맥박 속엔 변화, 우리는 변화를 기다리네 전깃불이 우리의 하루를 연장시키고 성냥 곽은 비어있지만 부엌에는 푸른 불빛으로 가스가 타오르고 손에는 담배, 식탁에는 차, 이 웃음은 단순하기만 해 그리고 더 이상은 아무 것도 없네. 모든 것은 우리 안에 있어. 우리의 마음은 변화를 원해. 우리의 눈도 변화를 원해 우리의 웃음과 우리의 눈물 그리고 우리의 맥박 속엔 변화, 우리는 변화를 기다리네 우리는 눈의 현명함과 재주 있는 손동작을 자랑할 수 없네. 우리에겐 서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이 모든 것은 필요 없어 손에는 담배, 식탁에는 차 그리고 주변은 닫히어 가고 그리고 갑자기 우리는 무언가 바꾸기를 두려워하네 *** "빅토르 최" (펌) *** 1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빅토르 최는 러시아인 마음속에 살아있다. 빅토르 최는 1962년 레닌그라드(지금의 상뜨 뻬쩨르부르크)에서 아버지 최동렬씨와 러시아 어머니 최 왈렌치나 와실리에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공장의 화부로 일하면서 당시 소련음악의 대부 보리스 그레벤시코프의 영향을 받아 음악을 시작한다. 사회적 여건 때문에 화부생활을 계속하면서 그는 18세때인 1981년부터 음악계로 뛰어든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는 못했다. 81년 고생 끝에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공연을 할 기회를 얻었으나 별 다른 주목을 끌지 못하고 필그림, 아브자쯔, 팔라티6 등 무명의 그룹과 3인조 트리오를 구성하는 등 여러 곳을 전전했다. 그러던 81년 말, 빅토르 최의 인생에 마침내 전성기가 찾아왔다. КИНО(키노)라는 락 밴드를 조직,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의 재능이 당시 레닌그라드 락카페운동을 주도하던 그룹들에게 소개되고 인정받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그러면서 다른 밴드의 찬조출연을 하면서 대중의 인기를 끌기 시작해, 82년도 앨범 <45>를 발표하면서 빅토르 최가 소련 전국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부터 발표하는 앨범마다 빅 히트를 기록, 소련을 대표하는 락 가수로 덴마크. 이탈리아, 프랑스 등 해외의 락 페스티발에 소련대표로 참가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1988년 Группа крови(혈액형)을 발표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모스크바 공연 때는 10만 관중이 모인가운데, 모스크바 올림픽 주경기장의 성화가 사상 네 번째로 타올랐을 만큼, 그의 인기와 국가적 지명도는 높았다. 그리고 그룹명이 말해주듯 빅토르 최는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1989년 오데사 황금주크 영화제에서 그는 영화 Игла(이글라)로 최우수 배우로 선정되었다. 그러던 중 1990년 8월 15일 라트비아 공화국의 수도 리가에서 교통사고로 28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마구 헝클어진 긴 머리칼과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거친 목소리 그리고 너무 단순하다 싶을 정도의 멜로디. 왜 그렇게 러시아 사람들 마음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사후에서도 왜 그렇게 추대받고 있는가? 그 이유는 그의 노래가 공산주의의 획일적 체제를 비판했으며 젊은이들의 순수한 사랑과 고독, 자유를 노래함에 있었다. 또한 중저음의 스타일의 카리스마적 보컬과 포크락을 연상케하는 음악성향, 더불어 구소련이 무너지고 페레스트로이카에 의한 민주화 바람에 음악으로 동참했다는 사실 등이다. 특히 소련의 락문화가 당국에 의해 감시와 핍박을 받던 시절이라 락 스타는 약간의 반체제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록 그룹의 연주장에 간다는 것은 운이 나쁘면 체포되는 것을 각오해야 할 정도의 일이었다. 때문에 КИНО의 리더 빅토르 최가 누렸던 인기는 거의 전설적인 것이었다. 저항시대에 자유를 노래한 시인 빅토르 최. 그는 체제와 전쟁을 버리고 자유를 찾자고 외치며 변화를 요구했다. 윤도현밴드가 다시 부른 혈액형의 나래이션부분이 이런 말이있다. 빅토르의 노래가 들린다. 싸늘한 그의 무덤 앞에 더많은 빅토르가 모여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다. 지금도 그의 노래가 끝나지 않은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빅토르의 노래는 시간을 초월하여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나는 자유를 위해 모든걸 바칠 수 있다고 얘기한 빅토르의 이야기처럼 러시아 사람들에게서는 아직도 그들의 자유를 외치며 더 많은 빅토르를 찾고 있을 것이다
한 빛: 한반도 남쪽 나라인 '대한민국' 의 지식인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기개있는 정신'과 '힘' 입니다!!! 항상 세계 4대 강국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점을 잊으면 안될 것입니다. [06/14-05:13] 달마씨: 오웃 기다렷던 빅토르 최의 노래. 자주 올려 주시지요. 자주 봅시다. 최사장님 [06/14-1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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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25-08-2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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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모스크바 거리에 울려 퍼진 노래 "변화를 기다려!" 최인영 2025. 8. 23. 06:57 러시아 전설적 로커 빅토르 최 사망 35주기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지난 15일(현지시간)은 러시아의 전설적 로커 빅토르 최가 사망한 지 35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는 고려인 후손이다. 1962년 6월 21일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980년대 그룹 '키노'의 리더이자 보컬로 활동하며 옛 소련 젊은이들의 영웅이 됐다. 특히 그는 소련 체제의 억압적인 분위기에서도 저항과 자유를 노래해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https://v.daum.net/v/2025082306575135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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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