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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자료실

ㆍ작성자 한 빛
ㆍ작성일 2002-01-24 (목)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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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군사력 증강과 동북아 평화


일본의 군사력 증강과 동북아 평화

<연재를 시작하며> 이 연재는 탈냉전 이후 일본 안보정책의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 미-일 동맹관계의 변화, 군사력 증강 실태, 평화헌법 개정 등 국내정치적 움직임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오늘날 일본의 안보정책이 동북아 평화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를 도출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3편의 글이 연재를 위해 각각 독립적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 필자가 지난(2001) 1월 30일 카돌릭대학에서 열린 <동북아 비핵지대와 평화를 위한 한일공동회의>에 발표한 논문을 약간 수정해 편집한 것임을 밝혀준다.

- 연재 순서 -

1. 미-일 동맹관계의 변화와 정치여론의 보수화

2. 일본의 군사력 증강과 자위대

3. 평화헌법 개정과 동북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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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군사력 증강과 동북아 평화①

미-일 동맹관계의 변화와 국내정치의 보수화

서보혁 / 평화문제연구회 회장


탈냉전 이후 일본의 안보정책은 당시 걸프전의 참여문제를 계기로 정가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몇 년간 진행된 논의속에서 일본은 향후 안보정책을 미국과의 동맹의 지속·강화, 외교적·군사적 수단의 병행을 통해 국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으로 수렴해갔다. 이것은 냉전시대와 비교할 때, 군사적 수단의 비중이 높아질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고,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현실주의적 국제주의'라고 부른다.

일본이 1990년대 이후 군사력 증대 및 안보정책의 변화를 가져온 몇 가지 모멘텀을 살펴보면, 이것이 단순히 외부 환경 또는 세력(미국)의 요구에 의한 수동적인 적응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먼저, 일본의 군사력 증대를 동반한 방위상의 책임 증대가 확대된 계기로 1992년 평화유지활동(PKO) 법안의 통과를 거론하는데 큰 이론이 없다. 이 법안은 비록 헌법의 테두리안 안에서이지만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둘째,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1995년 11월 채택된 신방위대강이다. 이것은 자위대의 병력 축소와 군사력의 질적 향상을 공식화하고, 이후 첨단무기 도입의 근거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이같이 일본 자체의 안보정책상의 변화를 동반하는 가운데 미일 양국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새롭게 형성해 나갔다. 1992년 1월 미일정상회담의 결과 발표된 '동경선언'에서 양국 정상(클린턴-하시모토)은 양국관계를 "세계적 동반자 관계"로 규정하였다.

미일간의 전략적 상호의존은 미국 국방부가 1995년 2월 발표한 '동아시아·태평양지역에 관한 미국의 안전보장전략(United Ststes Security Strategy for the East Asia-Pacific Region, 1995)이나, 같은 해 11월 일본이 발표한 '신방위대강(新防衛大綱)'에서 그 중요성이 재차 강조되었다. 또 1996년 4월에 발표된 '미일 안전보장공동선언: 21세기를 향한 동맹(Japan-U.S. Joint Declaration on Security - Alliance for the 21th Century'을 통하여 미일 안전보장체제를 새롭게 확립되었다. 이 선언에서 "양국간의 안보관계는 공동의 안보목적과 아태지역의 번영을 달성하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양국은 일본이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군사 작전에 일본이 군사적 지원활동을 통해 더많이 참여하는데 합의하였다.

미일 방위협력지침의 개정 작업은 미일 신안보공동선언의 후속조치로 나온 것으로, 1996년 6월부터 시작돼 양국간 군사적 협력범위를 기존의 "필리핀 이북의 극동"에서 "아태 전역"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첫째, 아태지역에 대한 안보비용 절감을 일본이 보완함으로써 대중 견제와 아태지역에 대한 영향력 유지가 가능하게 되었고, 둘째, 미일 안전보장체제하에서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이 갖는 이익은 첫째, 북한과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는데 미국과의 안보협력이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되었고, 둘째, 일본 군사대국화에 대한 주변국들의 우려를 고려하여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통하여 최소한 정치대국화를 순조로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일 신방위협력지침(신가이드라인)은 두 차례의 중간보고안(1996.9.19, 1997.6.8)을 거쳐 최종보고안을 1997년 9월 23일 발표하였다. 이 방위협력지침의 주요 내용은 ①평시의 협력, ②일본에 대한 무력공격이 감행될 경우의 대처행동, ③일본의 평화와 안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변사태에 대한 대응시 협력, ④효과적인 방위협력의 추진을 위한 향후 계획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지침의 두드러진 특징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미일간 군사협력 범위를 아태지역으로 확대한 것과 이때 "주변지역 유사시의 범위"를 지리적인 개념이 아닌 "사태의 성질에 파악하는 개념"으로 하여 자위대의 작전반경을 탄력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써 일본은 1980년대까지 지켜온 1천 해리 제한을 철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물론 미일 당국이 한반도와 대만 등 역내 불안정 요인이 존속하고 이에 대해 기동력있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기초한 것이다. 이같은 군사활동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일본은 양국의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포괄적인 메카니즘"을 설치하여 "공동작전계획(일본 유사시)" 및 "상호협력계획(일본주변 유사시)"의 수립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긴급사태시의 활동에 관한 조정작업을 평상시부터 준비하기 위하여 미일 "조정메카니즘"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이같은 신가이드라인을 조속히 법제화하여, 1999년 4월 27일 미일 무기조달 상호지원 협정 개정, 자위대법, 자위대의 미군에 대한 후방 병참지원 및 후방 검문, 유사시 구조활동을 허용하는 법안 등 3개의 법안을 의회에 통과시켰다.

이상에서 탈냉전기 일본의 안보정책은 냉전기의 상업주의적 대외관을 탈각하고, 국가이익을 자체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군사력 증대와 동맹관계를 능동적으로 재조정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일본 정치권의 재편과 여론의 추이가 보수적인 방향에서 결합하였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일본정치권과 여론의 보수화

1993년 7.18 총선거 결과는 자민당의 '55년 체제'의 붕괴를 가져왔다. 그 결과 비자민연립정부가 등장하였으나 내부의 불안정으로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이듬해 6월 30일 자민당-사회당-사키가케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일본 정계의 대변혁은 보수일색의 정당체제로의 전환, 전후세대의 정계 진입, 정치개혁의 촉진 등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에 따라 미일안보동맹관계, 자위대의 위헌성, 원자력 발전 및 국기·국가 문제 등 안보관련 주요 사안에 대해서도 기존의 대립적 입장이 점진적으로 수렴되는 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이는 특히 사회당의 전면적인 정책전환으로 촉진되었다. 사회당 당수 무라야마의 총리 취임은 이런 단면을 보여준 정치적 현상이었다. 한편 '55년 체제'의 붕괴의 틈새로 전후 신진정치인들의 정계진출이 두드러졌다. 이들은 대체로 외교안보정책에 대해 일본이 미일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독자적인 방식으로 국제협력에 적극 참여하여야 하며, 필요한 경우 군사력의 사용도 가능하다는 현실주의적 시각을 공유하였다.

이와 함께, 걸프전 이후 일본의 국제적 역할과 그와 관련한 외교안보정책 이슈에 대한 일본인들의 여론도 점진적인 변화를 나타냈다. 자위대와 방위문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은 1988년의 경우, 관심있다 54.8%(아주 10.4%, 어느정도 44.4%), 관심없다 43.4%(별로 35.0%, 전혀 8.4%), 모르겠다 1.7%였는데 비해, 1993년 들어서는 관심있다 67.3%(아주 17.0%, 어느정도 50.3%), 관심없다 30.2%(별로 24.8%, 전혀 5.4%), 모르겠다 2.5%로 나타났다. 당시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의 여론조사도 자위대의 PKO 참여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여론의 보수화 경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는 자위대의 국제적 역할과 평화헌법에 관한 여론의 추이에서 잘 나타나 있다.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이 헌법시행 50주년(1997년)을 맞이하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후 헌법이 '좋은 헌법'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48%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런 응답률은 이 신문이 1980년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모두 과반수 이상으로 나타난 것과 비교하면 그만큼 국민의식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개정 부분의 우선순위로는 '국제분쟁해결에 있어서의 군사적 역할'이 '수상의 공선제와 국민투표제의 신설,' '국가나 자치체의 정보공개' 등 국내적 사안보다 우선하고 있다. 이에 앞서 일본 외무성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1994년 일본 국민들은 일본의 PKO 참여에 65%의 응답자들이 자위대가 전쟁지역에 파견되지 않는 범위에서 대체적으로 이해한다고 하고 있다.

또 2000년 3월 18-19일 요미우리신문(讀賣新聞)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헌법개정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최초로 60%를 넘었으며, 국민들의 개헌 의사 가운데 70세 이상 고령층도 51%의 응답을 보인 것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개정 핵심사안으로는 '전쟁포기, 자위대문제'(37%)가 환경문제(31%), 사생활 보호문제(24%), 정보공개(20%) 등을 앞질러 1위를 차지하였다. 또 설문에 응한 헌법조사회 소속 의원 80명 중 55명(69%)이 헌법 개정에 찬성하였고 반대는 12명(15%)에 그쳤다. 그리고 최근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의 설문조사에서는 일본 국민들의 70%가 헌법 개정을 위한 연구작업을 추진하는 의회 헌법조사회의 활동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일본의 군사력 강화와 자위대의 군사적 활동반경의 확대를 지지·옹호하는 정치적 분위기가 정계는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보수화를 지향하는 민관 연대는 미래의 일본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는 정계의 무능력과, 사회통합성의 부재 상태에 있는 국민들에게 하나의 기회의 창 구실을 해주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


일본의 군사력 증강과 동북아 평화②

일본의 군사력 증강과 자위대 활동의 확대
: 전수방위에서 적극적 안보로


일본당국은 정치권과 여론의 보수화 경향을 군사력 증대와 자위대의 군사적 역할 확대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자위대의 군사력 증강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전수방위 규정을 사실상 허무는 전방위적인 안보정책의 근거로 평가된다. 예컨대, 방위청은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F-15 전투기 부대를 보내 북한내 기지를 파괴한다는 작전 시나리오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선제공격도 가능하다는 주장마저 자민당 내에서 제기된다. 특히, 영토밖의 분쟁에도 개입할 수 있다는 주변사태법 제정은 전수방위 원칙의 종언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위 수준을 넘어선 자위대

영국(22만명)보다 더 많은 병력(24만명)인 일본 자위대는 그러나 첨단무기를 보유한 양질의 군대로 평가된다. 자위대 공군력의 핵심인 F-15는 중국의 주력기인 SU-27보다 작전 반경이 훨씬 넓어 북경, 상해 등 중국의 주요도시를 타격할 수 있다. 일본의 F-15기는 수자면에서도 중국 보다 4배나 많고, 조기경보기(AWACS)의 도움을 받아 중국과 공중전을 벌일 경우 우세를 보일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일본은 올해 조기경보기 1대를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향후 공중급유기 4기 체제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전수방위 원칙에 따라 공격형 무기로 분류되는 공중급유기 도입은 번번히 좌절되었지만 이번에 '북한위협'을 명분으로 도입이 결정된 것이다. 또, 해상 자위대의 주력인 콩고급 이지스함은 공격뿐 아니라 일본 열도를 향해 날아오는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해상에서 격파할 수 있는 방어체계(TMBD)도 갖추고 있다. 이것은 중국의 대응전력을 압도하고 있으며, 2005년까지 2척을 추가 배치할 계획이다. 또 방위청은 차기 중기방위력 정비계획(2001-2005년)에 1만톤급 헬기 탑재형 호위함 2척의 도입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긴급시 일본인 수송, 유엔 평화유지활동, 재해지역 파견 등 다목적함으로 이용한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또 이는 헬기 3대가 동시에 이착륙할 수 있는 넓은 비행갑판을 구비한 첫 항모형 함선으로, 이것 역시 전수방위 원칙과 관련하여 주변국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육상 자위대의 경우, 한국군 주력 K-1 전차보다 성능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진 90식 전차가 1000대 이상, 적 유도탄의 탄도를 자동으로 포착해 즉각 적의 포대로 포를 발사·궤멸할 수 있는 76식 JMQ·P7 시스템, 세계 최초로 광섬유 유도장치를 채택한 다목적 유도탄시스템 등이 개발·배치되어 있다.

이와 같이 일본은 자위대를 첨단무기로 무장시키기 위해 막대한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다. 일본은 97년 기준으로 409억 달러를 지출했다. 이는 미국(2730억 달러)과 러시아(640억 달러), 프랑스(415억 달러)에 이은 세계 4위 수준이며, 한국(147억 달러) 보다는 3배나 많은 규모이다. 일본의 군사비 증대는 동북아의 경쟁상대로 간주되는 중국과 비교해서도, 절대액수나 증가비율에서도 높은 것으로 나타나있다(표3 참조). 또 일본은 중국이 반발하고 있는 전역미사일방어망(TMD) 연구사업에 1995년에 5백만 달러, 1999년에 8백만 달러 등 향후 5년간 2억 5천만 달러를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 자위대의 해외파병의 확대이다. 90년대 초부터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 참여해 온 일본은 그 활동 범위를 군사훈련으로 확대하고 있다. 작년 일본 정부는 '퍼시픽 리치 2000'으로 불리는 다국적 대잠수함 군사훈련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내년에는 미국, 호주, 태국, 싱가포르가 참가하는 다국적 군사훈련 '팀 챌린지'에 육상 자위대를 참가시키기로 하였다. 이는 자위대의 전신인 경찰 예비대(1950년) 발족 이후 처음 있는 일로서, PKO 활동으로 발판이 놓인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군사훈련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최근 모리 총리가 의회 연설에서 자국민 보호를 위해 PKO에서 자위대의 무기사용을 희망하는 자민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법안 마련을 고려중이라고 말한 것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 방위청은 동남아지역에서 분쟁 발생시 일본인 수송과 PKO부대의 배치를 위해 싱가포르의 군사기지 사용 방침을 싱가포르 정부와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자위대의 해외진출문제에 대해 평상시에 사전 양해를 얻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방위청은 또 한반도 유사시와 중국-대만분쟁을 염두에 두고 한국 및 대만에 거주하는 일본인 수송에 대해서도 원활한 환경정비를 추진할 방침이다. 이러한 일들은 자위대의 해외파병이 적어도 유엔 PKO 아래 진행되는 단순 분쟁관리활동을 넘어서서 실제 군사활동에 참여할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미국의 묵인하의 아시아로의 팽창

셋째, 일본 자위대의 군사력 강화는 비단 재래식 무기에 그치지 않고, 대량살상무기 개발 능력의 향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1995년 일부 공개된 비밀자료인 일본 외무성의 <일본 외교정책 대강>에는 "(우리는) 핵무기 생산을 위한 경제적·기술적 잠재력을 유지할 것이며, 이에 관해 일본은 어떤 간섭도 받지 않도록 대처한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비핵 3원칙에 따라 핵전력은 보유하지 못하지만, 필요시 핵무기 제조를 할 수 있는 능력은 충분하다. 동경에 있는 원자력위원회라는 단체는 "일본에는 4.7t의 분리된 플루토늄 재고분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단순 계산으로 약 200여 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여기에 2010년까지 고속증식로의 운용 계획에 따라 반입할 약 30-40t의 플루토늄도 있다. 일본은 핵무기 개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핵 기폭 장치 개발 전문가만도 수백 명에 이르며, 핵무기운반 도구인 H-2로켓(적재중량 4t)을 이미 개발해둔 상태이다. 또 목표점을 찾아가는 미사일 조준 기술도 이미 미국을 능가하는 수준에 올라 있다. 핵무기를 적재한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제작은 결심만 하면 6개월 이내에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러한 일본의 핵무기 개발능력은 우익세력의 위험한 정치적 발상으로 연결되고 있다. 작년에 방위청 정무차관 니시무라 신고는 일본의 핵무장 여부를 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발언이 그 한 예이다.

마지막으로, 이상과 같은 일본의 적극적인 안보정책과 군사력 증강이 미국과의 군사적 협력관계 속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미국은 아-태지역에 강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여기에 일본 당국은 미국과의 협의하에 안보정책을 발전시킨다는 입장이다. 가령, 일본 방위청은 차기 5개년 방위력 정비계획(2001-2005) 수립시 미국과 협의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양국이 신방위협력지침(신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일본 유사시와 주변 사태 발생시, 미군과 자위대간의 협력태세 정비는 물론, 예산 조치를 동반하는 구체적인 방위력 개선에서도 협의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고, 이는 미일 안보협력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요컨대, 일본 당국의 군사력 증강과 안보정책의 적극화는 기존의 전수방위 개념에서 나아가 적극적인 전방위 안보정책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하겠다.

위에서 최근 일본 자위대의 군사력 및 군사비 팽창과 이것이 미일동맹관계 속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특히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구축과 일본의 군사적 확장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점은 중국, 남-북한 등 주변국들의 우려와 군비경쟁의 에스컬레이션을 불러일으켜 동아시아의 안정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던져주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일본당국은 군사력 팽창을 위해 미국과 '북한위협'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점도 덧붙이고 싶다. 일본은 또 이같은 점을 합리화하기 위해 여론의 조성과 평화헌법 개정이라는 국내적 기반을 쌓아가고 있다. 최근 역사교과서 왜곡작업이 민관 협력하에 추진되고 있는 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음호에서는 자위대의 법적 지위 향상과 대외적 군사활동의 정당화라는 맥락에서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의 군사력 증강과 동북아 평화③
평화헌법 개정과 동북아 평화

서보혁/ 평화문제연구회 회장 / 2001년 3월 24일

일본정치권은 일본당국의 이같은 군사력 증강과 적극적인 안보정책이 현행 평화헌법의 틀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헌법 개정을 위한 논의를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논의 과정에 보수화된 일본 정치권내의 우익적인 안보관이 반영되어 있으며, 이것이 현실화 될 경우 동북아의 군비경쟁과 역내 불안정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적극화되는 평화헌법 개정

지난 연말,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내 최대파벌로 알려져 있는 하시모토파에서 자위대를 군대로 성문화하는 개헌안을 내놓았다. 자민당내 7개 파벌 중 최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하시모토파는 그 동안 개헌문제에 중도적 입장을 견지해 왔기 때문에, 이같은 개헌안은 앞으로 개헌문제가 일본 정가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임을 예고해 주고 있다.

하시모토파가 내놓은 개헌안은 일본의 독자적인 국방력 강화와 군대를 동원한 국제적 역할을 제시하고 있어 일본국내는 물론 주변국들의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이 개헌안은 또 일본정계에서 대표적인 보수인물로 평가되는 오자와 이치로가 작년에 내놓은 개헌안에 비해서도 적극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개헌안은 첫째, '군대' 보유를 성문화하여 자위대의 지위와 역할을 높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자위권 행사를 위한 전력보유를 제안한 오자와의 개헌안과 맥을 같이하면서도 이를 법제화한다는 점에서 더 적극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둘째, 하시모토파의 개헌안은 일왕(日王)를 '국가원수'로 명시하고 있어, 이 조항이 없는 현행 헌법의 모호성을 벗어나 일왕을 중심으로 국민을 통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 군국주의시대를 연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셋째, 개헌안에는 국제사회의 집단안전보장활동에 자위대 파병을 포함하고 있다. 이 대목이 주목되는 것은 자위대의 해외파병이 인도주의활동이나 후방지원활동에 국한되지 않고 무력사용에도 참가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시모토파는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내놓으면서 개헌 시안을 5년 이내로 설정하고 있어 개헌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초당적인 구성으로 개헌문제를 연구·논의하는 국회내 헌법조사회의 활동도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개헌을 주장하는 정당은 자민당, 보수당, 자유당인 반면, 반대하는 정당은 공산당과 사민당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최대 야당인 민주당은 당내 의견이 나눠져 있지만, 하토야마 대표는 금년 초에 자위대의 헌법 명시를 주장하여 평화헌법의 개정 방향을 더욱 보수적인 색채로 하는데 한몫하고 있다. 하시모토파의 이같은 적극적인 입장은 개헌 가능 의원수 2/3선에 더 다가가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1947년 제정된 현행 헌법이 개정되는데 있어서는 의원 2/3의 찬성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정계와 여론의 논의가 상당 기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90년대초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참여 법안이 국회에 통과되는데도 수년이 걸렸던 경험은 이 점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점은 일본의 정치권과 여론이 1990년대 초부터 탈냉전의 국제정치질서 변화와 자민당 일당체제의 붕괴에 이은 정계개편이 어우러져 보수 일색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각 정당과 이시하라 도쿄 도지사 등 보수정치인들이 과거사와 개헌문제를 공공연히 들고 나오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에 연유하고 있다. 하사모토파의 개헌안은 이런 보?
痴聆퓔?합법화하고 국제화하려는 일본 정계의 정치적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낡은 틀에서는 낡은 사고만이

작년 여름, 이시하라는 "도쿄에 재난이 발생하면 제3국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는데, 당시 도쿄도 청사에 걸려온 전화의 70%가 그의 발언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최근 일본당국이 추진하는 군사력 강화,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이 일부 정치권에서만 추진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최근 역사교과서 개정 움직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 사회 전체의 우익화, 보수화 경향은 민간-정당-정부의 순서로 분위기를 조성하고 일정한 시간을 거쳐 추진의 동력을 높히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일본의 이런 현상을 달리 말한다면, 냉전 붕괴 직후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정치대국화 시도가 거품경제 등으로 자체 한계를 보이자, 우익정치세력들이 취약한 일본 정체성의 틈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일본이 보이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은 경제대국화→정치대국화의 방식에서 경제대국화→정치/군사대국화로 전환,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嗤? 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일본이 과거사 청산을 명쾌하게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국의 안전보장 수준을 넘어서는 군사력 강화 및 그 법적 정당화 작업이 주변국들의 우려와 반발을 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을 추진하는 일본 정치세력들이 과거처럼 국제적인 인정과 합의를 얻지 않고 자국중심주의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역설적으로 일본의 대국화가 아니라 "고립화"의 길로 이끄는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이런 지적은 일본의 군사대국화 징후를 비판하는 경우에도 감정적이고 폐쇄적인 민족주의가 아니라, 이성적이고 개방적인 평화주의의 관점에 서야 함을 시사해준다고 믿는다. 이런 태도가 문화, 체제, 국력 등에서 차이를 보이는 동북아에서, 국경을 넘는 평화 연대를 이루는 출발이라고 보기 때문이다.(끝)

( 평화네트워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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