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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일보
작성일 2007-07-30 (월)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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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민족학교선 아직 ‘독립투쟁’이 계속된다


2007. 7. 30
중앙일보 (펌)


[도올고함(孤喊)] 재일 민족학교선 아직 ‘독립투쟁’이 계속된다

영화 ‘우리 학교’ 무대 일본 조선학교에 가다



며칠 전까지 한 방자한 여성의 학위날조 사기극으로 온 나라가 벌집 쑤셔 놓은 듯하더니,
이제는 과도한 종교적 열정으로 인하여 발생한 처참한 인질극이 온 나라를 들끓게 하고 있다.

이 세상 어디를 다녀봐도 한국사회처럼 숨넘어갈 듯한 드라마틱 이벤트로 끊임없이 뉴스 지면이 넘쳐나는 나라는 없다. 이것을 한민족의 활기라, 저력이라 해야 할까, 재앙이라, 저주라 해야 할까?




19일 나고야에 있는 아이찌조선중고급학교에서 엄홍길 대장과 함께.
이들이 부른 노래 중에 이런 노래도 있다.
“한 송이 꽃잎에 맺혀진 고운 이슬처럼 긴긴 밤 아침을 그리며….”
임진권 기자




이런 소요와는 아랑곳없이 이 시간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 있는 ‘나다’에 가보면, 그 어두운 영화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눈물을 흘린다. 나올 때는 퉁퉁 부은 눈시울을 감추는 것도 잊고 뿌듯하게 가슴에 서리는 인간애랄까 민족애랄까 그런 감정으로 미묘한 애수에 젖어버린다. 촬영기사 출신의 김명준이라는 젊은 감독이 혹카이도조선초중고급학교에서 3년간 실제로 그 학교 학생들과 뒹굴며 생활한 체험기를 다큐화한 명작! ‘우리 학교’!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 운파상 수상작!

비오는 날엔 비가, 눈 내리는 날엔 눈이,
 
때 아닌 모진 바람도, 창을 들이쳐,
 
너희들의 책을 적시고, 뺨을 때리고 할퀴고,
 
공부까지 못 하게 만들어도,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

초라하지만 단 하나뿐인 우리의 학교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

니혼노 각코오 요리 이이데스.

(일본학교 보다 좋다고요.)


지난 19일 오후, 산악인 엄홍길과 함께 아이찌조선중고급학교를 들어섰을 때 갑자기 저고리 교복을 입은 가냘픈 여학생들의 합창이 내 가슴을 엄습했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북받쳐오는 눈물을 참으려야 참을 길이 없었다.


그 순간 나의 혼백은 저 황량한 만주벌판, 고구려 시조 주몽이 세차게 말 휘몰던 비류수(沸流水)로 흘러가는 합니하(哈泥河)의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던 신흥무관학교 옛터의 추억을 더듬고 있었다.


칼춤 추고 말을 달려 몸을 단련코
 
새론 지식 높은 인격 정신을 길러
 
썩어지는 우리 민족 이끌어 내어
 
새 나라 세울 이 뉘뇨?



조선왕조가 일제침략으로 명멸해가고 민족의 존립이 위태롭게 되자, 조선왕조를 떠받치고 있던 도덕정신의 기둥들은 왕조의 혜택을 입은 선비들답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힘껏 발휘했다.


이들은 수만 석의 토지를 팔아치우고 노예를 해방시키고
사당을 폐지하고 신주를 매조하고 99칸짜리 대가를 초개같이 버리고 서간도로 이주했다.


당대 우리나라 최고 갑부 중의 한 사람이며 누대정승 집안의 자손 우당 이회영은 60여 명의 식솔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며 이와 같이 읊었다.


“압록강 물이야 어느 땐가 다하기도 하련만, 내 가슴 끓는 한이야 다할 날이 있으랴
(鴨綠江水有時盡, 此恨連綿無絶期)!”

안동 임청각의 주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우당 이회영 같은 지사들이 힘을 모아 서간도에 개척한 최초의 학교가 경학사(耕學社)였다. ‘경학’이란 밭을 갈면서 배운다는 뜻이다. 이 경학사의 하부기관으로 합니하 언덕에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가 우뚝 섰다.




20일 나고야조선초급학교에 성금을 전달한 후.
맨 뒷줄 중앙 왼쪽부터 엄홍길 대장, 도올 김용옥, 조경환 교장, 정윤일 후원회장.
4, 5, 6학년생은 소풍 나갔다. 온갖 탄압 속에서도 아직 학생 수 230명을 유지하고 있다.
기적 같은 이야기다.




이 학교를 다녀간 이름들,
만해 한용운, 『아리랑』의 저자 김산 장지락, 의열투쟁의 거목 약산 김원봉, 일석 변영태 등의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그 외로도 청산리대첩을 이끈 수없는 독립군 투사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었다.


임무에 희생하고, 체련(體練)에 필승하고, 간고(艱苦)에 인내하고,
사물에 염결(廉潔)하고, 건설에 창의하고, 불의에 항거한다!


이것이 학훈(學訓)이었다.

시인 윤동주, 구약학 학자 문익환, 아리랑의 감독 나운규가 다녔던 북간도의 명동학교(明東學校)나 서간도의 신흥무관학교, 국내지만 정주에 남강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五山學校) 등은 우리 민족교육의 참다운 요람이었다.


과연 우리 민족은 독립이 되었는가?
독립이란 무엇이뇨? 홀로 독(獨), 설 립(立)! 그것은 홀로 섬이다.

온몸으로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홀로 서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반 토막이 난 몸으로 홀로 설 수 있으리오?
우리는 1945년 8월 15일의 사건을 해방이라 부를 수는 있으나 독립이라 부를 수는 없다.

해방이란 풀려(解) 놓임(放)이다.
일제로부터 소극적으로 풀려났으되 적극적으로 독립을 쟁취한 바는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의 수난의 시작이었다. 독립을 스스로 쟁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분단의 서러움을 다시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 광복군 일부가 시안(西安) 종남산 기슭에서 미군과 함께 OSS 훈련을 받고 있었다.


히로시마 원폭투하와 함께 일본 천황의 무조건 항복 소식이 들려오자 우리 광복군은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고 미군은 샴페인을 터뜨리며 축배를 들었다. 그 광복군 중의 한 사람이 장준하였다. 왜 그랬을까? 광복군은 꿈에 그리던 조국 탈환의 마지막 행진의 당당한 기회를 상실한 것이다. 우리 민족이 8·15를 일본 항복으로 인한 미·소군 진주가 아닌, 독립군의 개선행진으로 맞이했다면 물론 그 이후의 사태는 달라졌을 것이다.


8·15 해방 당시 일본에 잔류하게 된 240만 조선인의 역경은 일제의 죄악의 결과지 그들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은 해방 직후 모두 나고야·오사카 등지의 기차역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일본에 진주한 미군정은 이들의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후 황량했던 역전의 토지를 점유하면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개척해 나가야 했다.


그런데 이들이 제일 먼저 세운 것이 ‘국어강습소’였다.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말, 우리글, 우리 역사, 우리 풍습을 가르쳐야 한다. 등사판으로 교과서를 만들고, 군용 공장, 절간, 동포집 2층을 빌려 민족교육을 시작했다. 바로 45년 8월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이렇게 수립된 민족학교가 540개나 된다.

우리가 또렷이 알아야 할 사실은 이 모든 민족학교의 출발이 남·북 분단정권 이전의 사태라

는 것과, 이들의 98%가 모두 경상도·제주도 지역의 사람이며 ‘북조선’과는 아무런 지연이 없

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엊그제 나다 극장을 들어서려는 나를 대학생들이 에워쌌다.
세종대학교 학보사 학생들이라 했다.


“한 말씀 듣고 싶습니다.”


“거 좋지! 꼭 알아야 돼. 이 ‘우리 학교’라는 영화를 재일 조선인의 문제로
객화(客化)시켜 파악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의 문제다.

우리 자신의 분단의 현실이 일본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극적으로 표출되고 있을 뿐이다.

남한 사람이나 북한 사람이나 매일매일의 일상생활 속에서는 분단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재일 조선인들은 그 분단을 시시각각 느낄 수밖에 없다. 그 분단의 비극을 삶 속에 체화하도록 일본이라는 정치권력과 생활문화가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아직 일본이라는 고립된 환경 속에서 독립투쟁, 민족투쟁, 통일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신흥무관학교나 명동학교의 분위기가 아직도 일본의 민족학교에서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2005년 10월, 나는 엄홍길 대장과의 개인적 인연으로 우연히 나고야를 방문케 되었다. 6·15공동선언 제4항에 의하여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가 보장되었고, 따라서 2002년 10월 대한산악연맹은 재일본조선인총련 산악회 사람들을 초청하였던 것이다.


총련 사람들이 한라·지리산뿐 아니라 꿈에 그리던 고향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한국의 산악인들이 솔선하여 만든 것이다. 그 뒤, 총련 산악회와 대한산악연맹 사이에는 많은 부드러운 교감과 교류가 이루어졌다. 나는 총련 산악회 10주년 행사에 엄 대장을 따라갔다가 우연히 나고야조선초급학교를 방문케 되었다. 나는 그때 그 학교에서 고국말로 수업받는 어린아이들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형언키 어려운 감격이었다.



그들이 주변의 일본 학교를 다닌다면 일본인과 동등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문부성 체제 하의 모든 재정혜택을 받는다. 그런데 민족학교는 각종학교(各種學校)로 취급되어 운전면허·요리학원 이상의 지위를 지니지 못한다. 당연히 정규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살기 때문에 버스로 두세 시간을 통근해야 한다. 학비도 엄청 더 든다. 미래 보장도 없다. 선생님들조차 일본학교 선생 봉급의 반도 못 받는다. 이런 학교에 나온다는 것은 하루하루가 투쟁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행복하게 우리말로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 불평 없이 전교생이 한마음으로!


2004년 10월 나 도올은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헌법재판소 판결을 논박하는 논문을 오마이뉴스에 실었고 그 글에 전 국민이 낸 성금이 3000만원이 넘었다. 나는 이 성금을 공적인 목적을 위해 쓰겠다고 공언했다. 그 돈의 반은 오마이뉴스가 취했고, 세금을 떼고 나니 135만 엔이 되었다. ‘나 개인에게 기부되었던’ 그 국민의 성금을 지난 20일 나고야조선초급학교에 전달했다.


김용옥
사진=임진권 기자



(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7/07/29/2961547.html




중앙일보: 이 ‘우리 학교’라는 영화를 재일 조선인의 문제로 객화(客化)시켜 파악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의 문제다.  -[07/30-23:05]-


한 빛: (중국 조선족 동포와 아리랑) * 클릭 -> http://www.hanbitkorea.com/technote/read.cgi?board=hb_board&x_number=1022691081&r_search=중국&nnew=1  -[08/09-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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